지갑을 샀다. 친구들은 “사회 생활할 때 보는 제품이니 좋은 걸로 사라”며 명품 브랜드를 추천했다. 보여지는 부분도 생각은 해야하니 일리 있는 이야기다. 직접 만져본 모 브랜드의 지갑은 가죽이 참 부드러워서 맘에 들었다. 색깔도 참 예뻤다. 하지만 가격 대비 내구성을 생각하니 선택이 어려웠다. 


적당한 가격에 예쁘고 튼튼한 지갑을 찾아 인터넷을 뒤졌다. 그러다 오리지널 미니를 그린 지갑을 찾았다. 그림 그린 지갑은 영 아니라고 생각해왔건만 미니(MINI)가 그려진 모습은 참 예뻤다. 자동차에 대한 호감이 선택을 바꿨달까? ‘마니아인 티를 제대로 낼 수 있겠다’란 생각이 들어 장바구니에 넣었다. 



알고보니 디자이너는 영국의 폴 스미스 경(Sir Paul Smith). 영국 패션에 기여한 공로로 기사 작위를 받은 세계적인 디자이너다. 전통적인 영국 의복을 비틀고 재해석한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했다고. 하지만 원래부터 패션에 관심을 두진 않았다. 어렸을 때 꿈은 자전거 레이서. 하지만 병원에서 6개월을 지낼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어 포기했다.

병원에서 요양 중이던 그는 현지 미술대학의 사람들과 만나면서 예술과 패션의 세계에 눈을 떴다. 이후 야학으로 패션을 공부해 영국의 수트 거리인 새빌로(Savile Row)에 앉았다. 1970년에는 매장을, 1976년에는 레이블을 세웠다. 그의 브랜드는 수트로도 유명하다. 한결 편안한 수트를 만들어 특별한 때가 아니어도 편하게 입을 수 있도록 했다고 자부하는 이유다.



그가 유명 디자이너로 인기를 끌던 1997년, 오리지널 미니의 제작사인 로버(Rover)는 데이빗 보위, 폴 스미스 등 영국의 명사들을 찾아 “런던 디자인 박물관에서 열릴 ‘영국 전시회’를 위해 특별한 미니를 만들어달라”며 디자인을 맡겼다. 그리고 폴 스미스는 86개의 스트라이프를 그어 완성한 ‘폴 스미스 미니’를 제출했다. 그는 당시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회고했다. 

“1960년대부터 미니는 젊음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패션 디자이너나 예술가 같은 창의적인 사람들에게도 순식간에 인기를 끌었죠. 미니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멋진 차였습니다. 그런 미니와 협력할 수 있게 되어 아주 기뻤지요.”



얼마나 눈에 띄었을까? 화려한 폴 스미스 미니는 전시회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그래서 로버는 양산형 모델을 계획했다. 하지만 너무 많이 선을 그은 탓에 그대로는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래서 색을 파란색 옷감과 맞췄다. 폴 스미스가 원단을 골라 로버에 전달하면서 같은 색을 맞춰달라고 했다고. 

실내는 검은색 가죽시트를 달고 진중한 멋을 냈다. 대시보드는 차체 색깔과 맞췄다. 하지만 글러브 박스 속, 엔진 로커 커버, 트렁크 속 커버는 초록색으로 칠해 상반되는 맛을 살렸다. 위트있는 수트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마무리 방법이다. 총 1,500대의 한정판을 만들었고, 일본 시장에는 검은색과 흰색 모델도 추가해서 팔았다. 



미니와의 협력 이후 그는 영국의 다양한 명소에 자신이 칠한 미니를 놓고 사진을 찍어 내놓았다. 커프스 링크, 지갑, 캔버스 백 등 다양한 제품에서 미니를 찾을 수 있다. 영국을 상징하는 자동차인 미니를 이용해 영국의 멋을 알리는 협력활동이랄까. 그랬던 그가 BMW의 품에서 미니가 다시 태어났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다행히 변함없는 애정을 보이는 듯 하다. 

“미니는 아주 작고 독특한 차입니다. 생동감과 에너지로 가득찼지요. BMW가 신형을 만들면서 이 모든 부분을 존중했다고 봅니다. 과거에서 벗어나거나 많은 것들을 바꾸려 하지 않았거든요. 요즘 세상에 맞춰 필요한 것들을 담고,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음에도 말이죠. 그래서 미니의 핵심은 그대로라고 봅니다. 그들이 미니를 새로 시작한 점을 존중합니다.”


어찌보면 폴 스미스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니 마니아가 아닐까? 자신의 제품에 직접 디자인한 미니를 그려넣는 그가 부러워진다. 왠지 자동차 마니아들을 노린 것도 같지만. 


글 안민희 기자(minhee@drivestory.co.kr)

사진 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