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북(The Negro Motorist Green Book)은 1936년부터 1966년까지 발간된 자동차 여행 가이드 서적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오로지 미국의 흑인만을 위한 정보지였다.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미국의 검은 역사를 들춰야 한다.



1940년대 그린북의 표지 (출처: 뉴욕 공립 도서관)


1965년까지 미국의 흑인은 백인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없었다. 이는 법으로 정해진 일이었다. 1876년부터 1965년까지 시행되었던 미국의 주법인 짐 크로우 법(Jim Crow laws)은 모든 공공기관에서 인종간 분리를 합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예를 들면 공립학교, 공공장소, 대중교통, 화장실, 식당, 식수대 모두 백인용과 흑인용이 있었다. 심지어 군대도 그랬다.



유색 인종 전용 대기실 앞에 서 있는 미국계 흑인 (출처: PBS)


이 법의 제정 배경을 보려면 당시의 상황을 읽어야 한다. 미국의 남북전쟁 후 통합기에 북부는 노예제 폐지를, 남부는 노예제 유지를 요구했다. 경제 기반의 차이가 다른 요구를 낳았다. 당시 디트로이트, 시카고는 산업 발전이 시작된 참이었다. 그런데 남부는 농업이 경제의 기초였다. 흑인 노예제 유지를 찬성한 이유다. 



미국 수정 헌법 제 14조 (출처: 미국국립문서기록관리청)


물론 미국 수정 헌법 제 14조 1절엔 이런 문구가 있다. “미국에서 태어나거나, 귀화한 자 및 그 사법권에 속하게 된 사람 모두가 미국 시민이며 사는 주 시민이다. 어떤 주도 미국 시민의 특권 또는 면책 권한을 제한하는 법을 만들거나 강제해서는 안 된다. 또한 어떤 주에도 법의 적정 절차 없이 개인의 생명, 자유 또는 재산을 빼앗아서는 안 되며, 그 사법권 범위에서 개인에 대한 법의 동등한 보호를 거부하지 못한다.”



백인 빨래만 받는다는 간판. 차별이 곧 사업이 되는 시기였다. (출처: 하워드 법대)



이는 남북 전쟁 이후 노예 출신 흑인과 그 후손의 권리를 보장할 목적으로 규정된 법이다. 그런데 1883년 미국 대법원은 수정헌법 제14조는 오직 정부의 활동에만 적용된다고 판시했다. 그래서 개인이나 단체가 해당 법을 어긴 경우에는 유명무실했다. 그러자 1890년에 루이지애나 주는 흑인과 백인의 편의시설을 분리하도록 하는 법률을 통과시켰다. 이것이 계속 번져나간 것. “분리하되 평등하다”는 정책은 열등한 대우로 이어졌다.



흑인에게 자동차를 판매하는 것과 도로에서 안전하게 다닐 권리를 제공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었다 


이후 미국의 산업화 및 경제 활성화를 바탕으로 흑인들 중 많은 이들이 중산층에 진입했지만 분리 정책은 여전했다. 도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많은 흑인들은 대중교통을 타봤자 무시만 당하니 가능한 빨리 자동차를 사려했다. 그런데 주유소나 정비소에 가도 백인 소유 점포면 주유나 수리를 거부당했고, 백인 소유 식당이나 호텔에서는 식사는커녕 숙박도 거부당했다. 심지어 “해가 지면 유색 인종의 출입을 거부한다”는 방침을 내세운 마을에서는 강제 추방을 피해 도망치듯 나가야 했다. 오래된 역사가 아니다. 1960년대에 1만 여 마을이 그랬다.



백인주의자들이 세운 표식 (출처: 미의회도서관) 


당시 상황을 증언하는 두 명의 발언을 살펴보자. 시민운동가이자 정치인 존 루이스(John Rober Lewis)는 1951년도의 가족 여행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주유소에 들리고 화장실에 가려면 신중한 계획이 필요했습니다. 오티스 삼촌은 전에 이 길을 다녀왔고, 유색 인종에게 화장실을 제공하는 곳과 그냥 지나치는 게 더 나은 곳을 알고 있었죠. 우리가 들려도 안전한 주유소의 거리에 맞춰 경로를 짰습니다.”



미국 66번 국도의 오래된 주유소 (출처: 프리레인지스톡)



워싱턴 포스트의 코트랜드 밀로이(Courtland Milloy) 기자는 1987년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 여행을 하며 1958년의 가족 여행을 회고하는 기사 ‘검은 고속도로’(Black Highways)를 썼다. 그 일부를 아래 옮긴다.



백인 입구와 유색 인종 입구를 나눈 가게 (출처: 인테림 아카이브)


“1958년, 난 냉방장치가 없는 아빠차 뒷좌석에 앉은 8살 꼬마였고 방광이 터질 것 같았다. 하지만 아빠는 차를 세우지 않았고 엄마는 몇 마일만 참으라 연신 말했다. 그러나 이유를 설명해주진 않았다. 당시 남부 전역 뒷길은 흑인 아이의 오줌을 누이러 차를 세우긴 너무 위험했으니까. 1960년대까지 어머니는 여행 전날 닭을 튀기고 계란을 삶고 요리를 하며 보냈다. 우리가 먹는 걸 좋아하니까 엄마가 요리를 한다고 생각했는데… 진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마찬가지로 흑인은 유색인 전용 숙소에만 묵을 수 있었다 (출처: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이제 나는 1987년의 길을 달리고 있다. 어머니는 과거를 회상했다. 내가 아기였을 때 아칸소에서 차가 고장 났는데 그곳의 백인들이 병을 데우지 못하게 해 차가운 우유를 먹여야 했다고. 그리고 하루 종일 차를 탄 뒤에 호텔에서 밤을 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되네였다고. 어린 백인 아이들이 모텔 수영장에 뛰어드는 것을 보았지만 우리는 뜨거운 차 뒷좌석에서 땀을 흘리며 밤을 지새야 했다고. 그리고 어머니는 말했다. 모두 보라고, 신용 카드로 호텔 객실을 예약해뒀고 원하는 곳에 멈춰 밥을 먹을 거라고.”



백인 급수대와 유색인 급수대의 구성 차이를 보라 (출처: 빈티지뉴스)


이처럼 당시 흑인 운전자 및 여행자들은 온갖 곤경을 겪었다. 처음 가는 동네에서 흑인이 쓸 수 있는 주유소와 화장실을 단 번에 알아볼 방법이라도 있을까? 게다가 흑인의 차로 보이면 부순 후에 주인이 나타나길 기다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그린 북은 이런 상황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린 북과 발행인 빅터 휴고 그린


그린 북의 발행자는 빅터 휴고 그린(Victor Hugo Green). 1892년 생으로 미국 우체국에서 근무했다. 뉴욕 할렘에 살던 그는 출장이나 여행을 갈 때마다 흑인을 받아주는 숙소나 식당이 없어 큰 불편을 겪는 이들에게 주목했다. 그래서 미국 전역의 흑인 이용 가능 업소를 파악해 가이드북을 만들기로 했다.



영화 그린 북의 제목은 이 책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그러나 미대륙의 모든 정보를 모으는 일은 벅찬 일이었다. 그래서 뉴욕으로 지역을 좁혀 흑인이 이용할 수 있는 호텔, 레스토랑, 주유소를 모아서 1936년에 제 1판을 펴냈다. 그리고 소개에 이렇게 적었다. “가까운 미래 언젠가 이 가이드를 만들지 않아도 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인종으로서 미합중국에서 동등한 권리와 특권을 가질 때입니다.”



그린 북의 내용 일부 (출처: 스미소니언)


발행과 함께 그린 북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1판은 뉴욕 정보만 담을 수 있었지만, 판을 거듭하면서 미국 전역의 정보를 담을 수 있었는데, 그린 북에 실리면 흑인 운전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것에 주목했기 때문. 가령 흑인이 묵어갈 호텔이 없는 동네는 흑인 민박을 소개했다. 흑인 민박을 운영한다면 그린 북에 자기 민박을 제보해야 장사가 될 판이었다. 



그린 북의 도시 관광 설명란 (출처: 브리태니커)


그린 북의 인상적인 점 중 하나는 흑인의, 흑인을 위한 독자 제보 시스템이다. 흑인 운전자를 위한 장소, 멋진 경치가 있는 장소, 방문한 관심 장소, 운전 경험 등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제보 받아 사용하는 경우 1건에 5달러씩 지불했다. 또한 우체국 직원이었던 빅터 휴고 그린은 전국에서 우편물을 배달하는 흑인 동료들로 하여금 유용한 정보를 나눠달라 할 수도 있었다.



흑인 운영 주유소의 모습 (출처: 엑슨모빌)


그린 북은 흑인 여행자를 위한 정보지로 성장해갔다. 지역별 정보 격차가 있다는 단점은 있었지만 미국, 캐나다, 멕시코, 버뮤다의 흑인용 시설에 대한 정보를 담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셈이었다. 게다가 처음에는 흑인용 숙박, 식당, 주유소에서 그쳤던 정보가 미국 전역의 흑인용 미용실, 나이트클럽, 컨트리클럽, 레저 시설 등으로 늘어났다. 게다가 흑인 판매 주유소를 늘리고 싶던 스탠더드 오일(ESSO)이 그린 북과 마케팅에 나서기도 했다. 



흑인 운영 주유소의 모습 (출처: 액슨모빌)


당시 그린 북의 입지를 독자 편지로 확인해보자. 1938년판의 독자 편지에서 뉴저지에 사는 윌리엄 스미스라는 독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동차 시대의 도래 이후 우리 인종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책입니다. 그린 북이 출간되기 전까지 리조트에 도착하는 방법과 장소를 아는 유일한 방법은 구전뿐이었습니다.”



1963년, 링컨 기념관 앞에 민권운동을 위해 모인 미국계 흑인(아프리카계 미국인) 


물론 그린 북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잘못된 짐 크로우 법(인종 분리법)에 대한 비판과 평등을 촉구하는 대신 흑인 환영 사업체로 사람을 이끌어 악법에 순응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는 것이다. 법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소형 사업체로 흑인을 이끌었다는 비판은 뼈아프다. 하지만 당시 시대를 살았던 이들에게는 흑인들의 생존 네트워크나 마찬가지 아녔을까.



스탠리 포먼의 1977년 플리처상 수상 사진 '더렵혀진 옛 영광'


1925년생 미국의 작가 존 알프레드 윌리엄스(John A. Williams)는 1965년 저서 ‘This is my country too’에서 “백인 여행자는 흑인이 운전하는데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전혀 모른다”고 썼다. 덧붙여 “남쪽에서 특히 조심해야 하는데, 운전기사 모자를 쓰거나 백인을 위해 차를 배달하는 척하는 것이 좋다. 지나가는 차와 사람들의 모욕을 견뎌야 했다”고 적었다.



당시 시대상을 고려하면 백인 운전수를 둔 흑인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었다  (출처: 영화 그린 북 스틸 이미지)


1940년생 미국의 사회운동가 호레이스 줄리안 본드(Horace Julian Bond)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당신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을 생각하겠죠. 지금 뉴욕에서 머리를 자르고 싶다면 쉽죠. 그 때는 쉽지 않았습니다. 백인 이발사는 흑인의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죠. 어디로 가야하는지 알려주려면 그린 북이 필요했습니다.”


그린 북의 저자 빅터 휴고 그린은 소개란에 이렇게 적었다. “가까운 미래 언젠가 이 가이드를 만들지 않아도 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한 인종으로서 미합중국에서 동등한 권리와 특권을 가질 때입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인권 운동을 펼치는 모습 (출처: 미국정보국)


마침내 그 날은 다가왔다. 195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이어온 미국의 흑인 비폭력 인권운동은 대중의 인종 차별을 줄이는 효과로 이어졌다. 이어 1964년 인종 차별을 금지한 민권법, 1965년 선거 자격을 인종에 따라 부정하는 것을 금지하는 투표권법을 통과시키며 흑인 인권 운동은 결실을 맺었다. 



1966년 발행된 그린 북의 최종판 표지


하지만 그린 북의 발행인인 빅터 휴고 그린은 1960년 숨을 거둬 그가 고대하던 날을 보지 못했다. 이후 1966년, 그린 북의 최종판이 발간되었다. 이름은 흑인 운전자의 그린 북에서 여행자의 그린 북(Travelers Green Book)으로 바뀌었다. 법으로 명기한 권리와 특권 앞에서 이제 더는 흑인 운전자를 위한 가이드가 필요 없다는 표현이었다. 흑인 운전자를 위한 내용을 담고 있었으나 표지에는 금발 백인 여성의 그림을 담았다. 차별의 시대 흑인 운전자를 위한 가이드를 평등의 시대에 여행자 모두를 위한 책으로 끝낸다는 선언. 아름다운 작별 인사였다. 



연설 중인 마틴 루터 킹의 모습 


“우리는 여행으로 피곤해 무거워진 우리의 몸을 고속도로 근처의 모텔과 도시의 호텔에서 누일 수 없는 한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흑인의 이동이 작은 빈민가에서 큰 빈민가로 가는 것일 뿐인 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자아를 박탈당하고 백인 전용이라는 표시에 의해 품위를 빼앗기는 한 절대 만족할 수 없습니다. 절대, 절대 우리는 만족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정의가 물처럼 흐르고, 공정함이 힘찬 시내처럼 흐를 때까지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1963년 8월 28일, 미국 워싱턴 D.C 링컨 기념관에서 마틴 루터 킹의 연설 중 일부 발췌


글 안민희 기자(minhee@drivestor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