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자동차 제조사 마쓰다가 소형 상용차 ‘봉고’를 단종할 계획이다. 1966년 등장한 봉고는 박스형 승합차의 대명사. 50년 동안 약 296만 대의 판매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제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2019년 생산 대수는 1만 190대로 전체 생산량의 1%에 못 미친다. 따라서 마쓰다는 봉고를 단종하고 아낀 돈을 승용차 개발에 사용하기로 했다. 분명 옳은 결정이다. 하지만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름인지라 시대의 변화를 보는 기분이 묘하다. 


대한민국에 봉고가 들어온 것은 1981년. 한 때는 ‘승합차’라는 단어 대신 ‘봉고차’라는 단어가 쓰였을 정도로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한 모델이다. 하지만 그 도입 배경은 ‘블랙 코미디’나 다름없었다. 1981년 공식 발표된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다. 당시 정부는 일본처럼 자동차 제조사를 통합하고 생산 영역을 나눠 경쟁력을 높이려 했다. 현대와 새한을 통합해 승용차만, 기아와 동아를 통합해 소형 상용차만 생산하게 하는 것이 원안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치였기 때문에 원안대로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현대는 트럭을, 기아는 승용차를 잃게 됐고 이는 심각한 타격이 됐다. 멀쩡히 준비하던 후속 모델과 신형 모델을 못 쓰게 됐으니 엄청난 손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경쟁 없이 무슨 발전이 있을까? 자동차공업 합리화조치는 1986년 사실상 해제되었지만(완전 해제는 1989년), 한국 자동차 산업의 후퇴를 불러온 악법 중 하나로 손꼽힌다. 


자의도 아닌 타의로 순식간에 ‘소형 상용차 전문 제조사’의 길을 걷게 된 기아차는 얼마나 황당했을까? 위기 속에서 기술 제휴 상대인 마쓰다의 손을 굳게 잡을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들여올 차가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1980년에 마쓰다 봉고 2세대 트럭 모델을 들여와 ‘기아마스타 1톤디젤’로 팔았고, 1981년에는 승합차 모델을 들여와 ‘봉고’라는 이름 그대로 팔았다. 처음 등장한 모델은 ‘기아마스타 봉고 코치’. 12인승 모델이었다.


당시만 해도 꼭 필요했던 박스형 승합차인 봉고는 대박을 쳤다. 박스형 승합차를 ‘봉고차’라고 부를 정도로 차급을 대표하는 모델이 됐다. 이는 기아의 노력이 안긴 결과다. 승합차 모델 추가 및 캠페인 진행이 대표적인 사례. 1981년에는 12인승 모델만 있었지만 1982년에는 3인승 밴 및 6인승 밴을, 1983년에는 9인승 모델을 추가했다. 이후 기아는 휴가철마다 봉고 캠프를 여는 등 가족 마케팅에도 힘썼다. 현재 카니발이 가족용 자동차로 여겨지는 것과 비슷하다.


이후 봉고 트럭과 승합차의 운명은 엇갈렸다. 트럭은 이름을 유지하며 세대를 이었지만, 승합차는 이름을 바꿔 베스타, 프레지오로 이어졌다. 이후 2004년에 봉고 3 트럭 출시와 함께 봉고 3 코치란 이름으로 재등장했지만 2006년에 단종 됐다. ‘전방조종자동차 안전기준강화’에 맞춰 박스형 승합차가 단종 되고 승용 미니밴의 영역이 넓어진 것. 결국 봉고의 이름은 트럭에만 남았다. 그래도 기아를 대표하는 모델로 앞으로도 계속될 테니 아쉬움은 없겠다. 


지금의 봉고는 우리 기술로 만든 차다. 마쓰다 봉고와는 다른 모델이 됐다. 그럼에도 시작점이었던 모델이 단종 된다는 소식을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 기아 봉고가 퇴장하면 더 섭섭한 기분이 들겠지만. 다행히 기아 봉고는 지금도 수많은 물건을 싣고 우리 곁을 달리고 있다. 이제는 전기모터까지 달았으니 한참은 더 우리 곁에 있을 것이다.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달려주길.


글 안민희 기자(minhee@drivestory.co.kr)

사진 마쓰다, 기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