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현지시간), 미국 LA 모터쇼에서 포르쉐가 8세대 911을 공개했다. 포르쉐는 “911은 우리의 혼이며, 시간을 넘어선다”고 밝혔다. 여러가지 제품들이 등장하고 사라지는 중에도 911은 계속 자리를 지켰으며, 계속 새로운 기술을 담아 진화해왔다는 주장이다. 가령 20년 전 등장한 911 GT1의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3.9초였다. 신형 911 카레라 S는 3.5초에 불과하다. 911의 기본형 모델만 해도 20세기의 스페셜 모델을 뛰어넘은지 한참 됐다.




오늘은 8세대 911 이야기가 아닌 20세기의 특별한 911 중 하나를 소개한다. 사진 속 차는 마에스트로(Maestro)로 불리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의 포르쉐 911 터보다. 그는 20세기의 클래식을 상징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비판과 논란 또한 따라붙는 사람이지만,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자로 35년 간 수많은 녹음을 남겨 클래식을 많은 이들에게 전했다는 점을 빼놓을 수는 없다. 




카라얀은 자동차 마니아였다. 잘 달리는 자동차로 유명한 독일의 베를린 필하모닉에 출퇴근하면서 여러 자동차를 탔을법하다. 포르쉐와도 인연이 깊은데 356 스피드스터, 550A 스파이더, 959 등 여러 모델을 갖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는 자동차의 기계적인 부분에도 상당히 관심을 뒀다. 빈(Vienna) 공대에 진학한 이력도 있다. 중간에 학업을 접고 음대로 가지 않았더라면 자동차 업계에서 이름을 남겼을지도 모르겠다.




포르쉐의 기록에 따르면 카라얀은 1974년에 특별주문 부서(지금의 익스클루시브 매뉴팩처)를 찾아 ‘더 가볍고 더 스포티한 911’을 요청했다. 공차중량 1,000㎏ 아래, 출력 대 무게 비율은 1마력에 4㎏ 미만’란 조건도 붙였다. 911을 더 빠른 차로 만들어달라는 어려운 주문이었지만 충분히 가능했다. 당시 포르쉐는 터보차저의 가능성을 열심히 살피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포르쉐는 카라얀 전용의 911 터보를 만들었다. 경주용 모델인 RSR의 새시를 바탕삼아 카레라 RS의 옷을 입혔다. 서스펜션도 레이싱에 사용하는 것과 동일하게 맞췄다. 차체에 칠한 페인트가 독특한데, 1974년 르망 24시간 레이스에서 2위를 차지한 911 카레라 RSR의 마티니 레이싱 도색을 따서 입혔다. 뒤에는 카라얀의 이름도 달았다.




실내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부품을 덜어내는 한편 도어 핸들도 가죽 끈으로 바꿨다. 뒷좌석은 없다. 대신 강철 롤케이지를 달았다. 엔진은 포르쉐 911 터보(타입 930)의 것을 바탕삼아 캠샤프트와 터보차저를 바꿨다. 개조 전 최고출력은 260마력이었는데, 360마력으로 높였다. 카라얀은 연주회가 끝나면 애마에 올라타 빠르게 자리를 떴다는데, 혹시 이를 위해 성능을 다듬은 것이 아닐까 싶다. 




카라얀의 911 터보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차다. 카라얀은 1980년에 차를 팔았다. 이후 많은 자동차 수집가들이 탐낸 모양이다. 2004년에 인수한 여섯 번째 주인은 단 한 번도 차를 몰지 않았다. 약 3,000㎞ 밖에 달리지 않은 카라얀 911 터보의 예상가치는 300만 유로(약 38억 2,128만 원)를 넘긴다. 하지만 2017년 7월, 이 차가 갑작스레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카라얀이 책임자를 맡았던 잘츠부르크 음악 축제 기간에 맞춰서다. 




카라얀과 베를린 필하모닉에서 18년 동안 합을 맞췄던 비올리스트 윌프라이드 스트렐리(Wilfried Strehle)는 이 차를 시승하며 다음과 같이 과거를 회상했다. “이 차를 다시 볼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는 그의 차 앞에 어린 아이들처럼 모여서곤 했어요. 아주 환상적이었지요. 카라얀은 결코 쉬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계속 배우며 우리 모두를 발전시켰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모델이었고, 우리도 그를 따라했지요.”

글 안민희 기자(minhee@drivestory.co.kr)

사진 포르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