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의 브랜드 정체성에는 ‘레이스’가 있다. 레이스를 통해 더 빠르고, 더 나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 페르디난트 페리 포르쉐는 “극한의 레이스에서 우리는 약점과 마주하게 되며, 이는 기술자가 새롭고 더 좋은 방안을 찾게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약점을 찾고 고치기를 반복하는 것이야 말로 포르쉐의 비법이 아닐까?  


레이스를 통해 배운 기술은 양산차에도 적용되기 마련. 대표적인 사례가 스티어링 휠이다. 포르쉐는 스티어링 휠에 버튼을 많이 다는 편이 아니다. 레이스카도 마찬가지였는데, 1999년까지만 해도 포르쉐 레이스카의 스티어링 휠에는 버튼이 없었다고. 포르쉐 모터스포츠가 스티어링 휠의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00년이 되어서다.  


포르쉐 모터스포츠 이사인 파스칼 줄린든(Pascal Zurlinden)은 “믿기 어렵겠지만 2000년에야 레이스카용 스티어링 휠을 본격 개발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불과 20년 만에 단순한 스티어링 휠을 다기능 컨트롤러로 바꿨습니다. 엄청난 진전을 이뤘지요. 911 RSR의 스티어링 휠에는 30가지 기능이 있어요. 많은 설정을 담되 편안하게 다룰 수 있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포르쉐의 팩토리 드라이버인 티모 베른하르트(Timo Bernhard)에 따르면 1999년 카레라 컵만 해도 스티어링 휠에 아무 버튼도 없었다고 한다. 라디오, 피트 리미터 등이 없어 속도계만 보고 달렸다고. 하지만 2004년에 사용한 포르쉐 911 RSR에는 버튼 6개를 달았다. 이후 스티어링 휠의 기능 늘리기 및 디자인 개선은 빠르게 진행됐다. 승리를 위해서다.  


레이스카의 스티어링 휠에 대해 로망 듀마(Romain Dumas)는 “올바른 배치와 쉬운 사용법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파이크스 피크에서 포르쉐 911 GT3 R을 운전했어요. 스티어링 휠에 와이퍼 버튼이 있었는데 1초를 누르면 시간차(INT)로, 3초를 누르면 연속 작동이 됐어요. 그런데 쓰기 어렵더군요. 파이크스 피크는 코너를 돌자마자 바로 다음 코너가 나오니까요.” 


포르쉐는 레이스카 스티어링 휠을 만들 때 레이서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다. 다룰 사람이 제작에 참여하고 사용설명서도 같이 만들어야 효율이 좋다. 버튼 배치는 인체공학에 초점을 둔다. 중요 기능을 우선 배치하고, 버튼 2개, 3개를 동시에 눌러 다른 기능을 쓰는 방식이라고. 포르쉐의 설명에 따르면 911 RSR의 스티어링 휠은 30개 기능을 사용할 수 있고, 사용설명서만 27장에 달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레이스카의 스티어링 휠은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모양과 재질도 여러 번 바뀌었지요. 나무를 이용해 만든 원형 스티어링 휠, 철제 림에서 이제는 다기능 컨트롤러로 진화했어요. 모양도 비행기의 조종간과 비슷해졌죠. 그런데 구형 스티어링 휠과 신형 스티어링 휠을 비교해보면, 디스플레이와 전자 장비를 달았음에도 신형이 훨씬 가볍죠. 알루미늄과 탄소 섬유를 사용한 덕분입니다.” 포르쉐 모터스포츠 파스칼 줄린든 이사의 말이다.  


글 안민희 기자(minhee@drivestory.co.kr) 

사진 포르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