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블랙 데이다. 왜 우리는 솔로의 안식일에 검은색이란 이름을 붙였을까? 상술은 잠깐 접어두고, 자동차 마니아 입장에서 색깔을 살펴보자. 


검정은 어떤 색일까? 이론만 따지면 빛을 흡수하는 색이다. 하지만 우리는 검정에 죽음, 권위, 품위라는 이미지를 붙였다. 어떻게 이런 이미지가 붙었을까?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존 하비 교수는 <스토리 오브 블랙>, <맨 인 블랙> 등 검은색 관련 서적을 통해 “검정의 역사는 인간의 공포를 조금씩 점령해 나간 역사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가 보는 색은 언어, 문화, 심리, 사회적 상태 모두 반영한 것이다”고 말한다. 인류 문화에서 검은색이 나쁜 의미를 갖게 된 것은 우리의 선조들이 밤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그의 저서에 따르면 1400년대까지만 해도 검은색 옷은 성직자와 조문객의 옷이었다. 하지만 부르고뉴의 군주인 필리프가 1419년 프랑스군에 살해된 아버지를 애도하기 위해 검은색 옷을 입으며 정치적 권력의 상징이 되었고, 1400년대 중반에는 귀족들도 검은색 옷을 입었다. 


이렇게 검은색은 신분을 상징하는 옷 색깔이 되었다. 사실 지금 사회에서도 마찬가지다. 계급은 사라졌고, 시대는 바뀌었지만 검은색 정장은 여전히 직업과 경제적 지위를 상징하는 옷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차려입는 옷의 색깔이기도 하다. 따라서 품위를 강조하는 대형 세단의 색이 검정인 것도 비슷한 이유가 아닐까? 


사실 자동차 산업에서 검정은 최초의 색이다. 자동차 산업 초기에는 색을 칠하지 않거나, 검은색 페인트칠하는 것이 전부였다고. 대표적인 사례가 포드 모델 T다. 미국 코팅 협회(ACA)에 따르면 20세기 초의 자동차는 전부 천연 물감으로 색을 칠했다. 여러 번 색을 칠하는 수작업이 필요했고 말리는 시간도 오래 걸렸다. 당시에는 페인트를 코팅의 개념으로 봤다.


검은색 대신 다른 색깔 자동차를 고를 수 있게 된 것은 1920년대. 듀퐁이 자동차용 페인트를 개발하면서부터다. 스프레이 분사가 가능해지면서 자동차 공장에서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쉐보레는 이를 이용해 1924년부터 7가지 색깔을 도입했고, 캐딜락은 1930년부터 투톤 도색 옵션까지 넣었다. 과거에는 자동차가 희귀했으니 소유하는 것 자체로 만족했다지만, 색상의 도입은 자동차 소비자의 눈을 높였다. 개인의 개성을 반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양한 색깔의 도입으로 검은색 자동차의 인기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1950~1970년대의 미국 자동차가 대표적인 사례다. 기술 발전과 경제 호황 덕분에 자동차 디자인은 거대한 차체로 부를 상징하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에 맞춰 색깔도 화사해졌다. 원색적이고 밝은 색깔이 인기를 끌었다. 특히, 메탈릭 컬러 안료가 도입되면서 머슬카와 어울릴 강렬한 색깔도 등장했다.


다시 검은색 자동차가 인기를 끈 것은 1980년대. 액솔타 코팅 시스템이 발간한 차량 색상 선호도 조사를 살펴보면 1961년부터 1984년까지 미국, 유럽,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자동차 출고 색상 1~5위에 검은색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왜 지금은 검은색 자동차가 인기일까? 


문화의 이유에서 살펴보면 기업 문화의 영향이 컸다고 본다. 지금은 자동차로 경제적 지위를 보여주는 시대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무채색이 빠르게 인기를 끈 것도 같은 이유 아닐까? 1980년대 유럽 자동차 시장에선 빨간색이 색상 1위였다. 미국은 파란색, 빨간색, 갈색이 상위권이었다. 하지만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는 1970년대부터 흰색, 은색, 은회색 등의 무채색이 상위권이었다. 


아시아의 자동차 보급이 빠른 경제 발전과 동시에 찾아왔다는 점에서 원인을 찾는다. 우리에게 있어 ‘내 차’란 경제 발전 이후 생긴 물건이다. 1980년대 중후반 ‘마이카 붐’의 시작 당시의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 애차의 색깔을 정하지 않았을까? 취향은 개인의 것이라지만, 개인을 감싸는 사회에서도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전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는 무채색이 대세가 되었고, 검은색 자동차의 인기도 계속 높아졌다. 하지만 과거의 검정과 지금의 검정은 다르다. 무채색의 시대에서도 색깔은 계속 달라진다. 대표적인 것이 반타 블랙이다. 영국의 서리 나노시스템즈에서 만든 물질로, 빛을 99.965% 흡수하는 물질이다. BMW는 2019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X6에 반타 블랙을 칠해서 공개한 적이 있다. 


미래의 자동차 색깔은 어떻게 될까? 무채색 안에서도 다양한 시도가 이어질 것이다. BASF의 분석에 따르면 앞으로 무채색이 인기를 계속 끌 것이지만, 바탕색이 조금 더 어두워지리라 본다. 고급 세단과 대형 SUV가 늘어나서다. 검은색은 커다란 자동차에 잘 어울리는 색깔이긴 하다. 검은색 S-클래스, 검은색 에스컬레이드 등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으니. 하지만 작은 자동차에도 검은색은 어울릴 수 있다. 


글 안민희 기자(minhee@drivestory.co.kr)

사진 각 제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