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노삼성차가 마스터의 판매를 시작했을 때, 난 내심 캉구(Kangoo)의 도입을 희망했다. 세단을 타는 내게 SUV의 넓은 짐공간과 실용성은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껑충한 운전감각은 아무래도 익숙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내 공간 넓고 실용성 좋은 캉구를 꿈꿨지만, 르노삼성은 “검토 중”이라고 했다. 


사실 르노삼성이 지금 당장 캉구를 가져왔을 때 얻을 이익은 많지 않다. 현행 모델의 경우 2007년에 첫 선을 보였다. 지금 당장 들여와 열심히 팔아도 신 모델이 덜컥 등장하면, 자칫 소비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신 모델이 나와야 출시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본다. 




그래서 차라리 올해 등장한 따끈따끈한 MPV인 시트로엥 베를링고(Berlingo) 또는 푸조 리프터(Rifter)의 수입을 기대하기로 했다. SUV 쏠림이 심한 국내에서는 많이 팔 차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차를 원하는 소비자를 제대로 휘어잡을 수 있다고 본다. 틈새 시장을 공략할 힘인 ‘상품성’이 아주 뛰어난 차이기 때문이다. 




둘은 PSA의 EMP2 플랫폼을 이용한 형제 모델이다. 1996년 시트로엥 베를링고의 등장 이후 형제 모델인 푸조 파트너가 같이 등장했다. 현행 모델은 2018년 출시한 3세대 모델이다. 소형 MPV이자 짐 싣는 밴으로 유럽에서 각광받는 차다. 이 차의 무기는 알뜰함 그 자체다. 작지만 적재공간은 넘치고, 기름도 적게 먹는다. 




먼저 디자인을 살펴보자. 신형이라 그런지 두 모델 모두 요즘 유행하는 SUV 스타일을 더했다. 푸조 리프터가 3008과 연계된 디자인을 강조했다면, 시트로엥 베를링고는 에어범프를 사용하는 등 C4 칵투스와의 연결고리를 내세운다. 두 모델 모두 지붕을 커다란 유리패널로 처리해 실내에서 햇살을 맞을 수 있도록 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실내 분위기는 다른듯 같다. 푸조의 경우 208부터 대시보드 상단에 계기판을 달기 시작했는데, 익숙해지면 도로에서 눈을 떼지 않고도 편하게 속도와 엔진회전수를 확인할 수 있다. 시트로엥의 경우 전통적인 자리에 계기판을 뒀다. 대신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달아 주행 중 시인성을 높였다. 형제 모델인만큼 에어컨 조작부 및 송풍구의 위치가 같다. 돌려쓰는 다이얼 방식의 기어레버도 같다.


두 모델 모두 뒷좌석 문은 미닫이(슬라이드) 방식. 높은 등급의 경우 뒷좌석 3개를 각각 나눠 접거나 움직일 수 있다. 이는 활용성을 높이는 부분 중 하나인데, 예를 들어 스키 여행을 간다면 뒷좌석 가운데만 접어서 쓸 수 있다. 높은 머리 공간을 활용한 천장 수납함도 매력적이다. 뒷좌석에 앉았다면 여행 중 필요한 것들을 찬장에 넣고 뺄 수 있어서다. 게다가 뒷좌석 바닥 밑에는 수납 공간도 숨겼다. 은근 저장공간이 많은 차다. 




시트로엥 베를링고와 푸조 리프터 모두 5인승(기본형), 7인승(확장형)이 있다. 5인승 버전의 길이×너비×높이는 4,403×1,921×1,844㎜. 휠베이스는 2,785㎜다. 적재용량은 뒷좌석을 세우면 775L, 접으면 3,000L에 달한다. 공차중량은 1,430㎏인데, 사람과 짐을 합쳐 690㎏는 태우고 달릴 수 있다. 7인승 버전은 350㎜ 더 길고(4,753㎜), 휠베이스도 190㎜ 더 늘어난다.(2,975㎜). 짐 공간은 기본이 1,000L, 뒷좌석을 모두 접으면 4,000L로 늘어난다.



엔진은 직렬 3기통 1.2L 터보 또는 직렬 4기통 1.5L 디젤 엔진을 고를 수 있다. 휘발유 엔진은 110마력과 130마력으로, 디젤 엔진은 74마력, 99마력, 128마력의 세 가지로 나뉜다. 128마력 디젤 모델에 자동 8단 변속기를 맞물리면 0→시속 100㎞ 가속에 10.8초가 걸린다. 연비는 영국 기준 복합 23.2㎞/L. 도심 21.7㎞/L, 고속 23.8㎞/L다. 각 지형에 걸맞게 다섯 가지(보통, 눈길, 진흙탕, 모래밭, 트랙션 컨트롤 오프)로 구동력을 나누는 그립 컨트롤도 달았다. 



편의장비로는 무선 충전, 애플 카플레이, 안드로이드 오토, 미러 링크 등을 지원하고, 중앙 모니터에는 어라운드 뷰도 띄운다. 물론 옵션이지만. 안전장비로는 자동 긴급 제동, 차선 이탈 경고 및 차선 유지,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운전자 주의 경고, 스마트 하이빔, 트레일러 진동 완화 등의 기능이 있다. 에어백은 앞좌석, 앞좌석 사이드, 앞뒤 커튼 등을 단다.




가격은 영국 푸조, 시트로엥 홈페이지에서 확인해봤다. 푸조 리프터 5인승 1.5L 디젤 자동 8단 변속기 모델의 최저가는 1만9,689파운드(약 2,860만 원). 최상위 모델을 골라 모든 옵션을  붙인 풀옵션의 가격은 2만7,754파운드(약 4,032만 원)이다. 시트로엥 베를링고의 풀옵션 모델은 2만6,040파운드(약 3,783만 원)이지만 푸조에 비해 장비가 조금 더 적었다. 




2019년식 푸조 2008 SUV의 시작가가 3,150만 원, 3008 SUV의 시작가가 4,070만 원임을 고려해보면 한국 시장에 맞춰 적당히 옵션 맞춘 푸조 리프터를 2,000만 원 후반대에 들여오면 새로운 선택지가 될 수 있단 생각이 든다. 



디자인만 봐서는 시트로엥 베를링고가 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C4 칵투스의 가격과 너무 가깝게 붙인다면 판매 간섭이 일어날 수 있다. 푸조와 시트로엥의 매력은 독창성에 있다. 남들이 똑같은 SUV를 팔 때, 대범하게 틈새시장을 공략해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가장 중요한 건 가격이겠지만. 

글 안민희 기자(minhee@drivestory.co.kr)

사진 PSA 그룹, 르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