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911의 라인업은 상당히 복잡하다. 카레라에 자연흡기 엔진을 얹었던 시절엔, GT3과 GT3 RS가 자연흡기 엔진 라인업의 최고봉이었다. 가장 강력한 자연흡기 엔진 모델이란 위상이 있었다. 그런데 터보 엔진으로 갈음한 지금은, 단발성 생산이었던 911R을 제외하면 GT3 계열이 유일한 자연흡기 엔진 911이 되었다. 게다가 강력한 만큼 비싸다. 그래서 자동차 마니아의 마음을 더욱 애달프게 만드는 차가 됐다.


올해는 포르쉐 911 GT3의 20주년. 포르쉐는 GT3의 성공 비결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다. “GT3의 성공 비결은 모터스포츠 경험을 도로용 자동차에 접목한 것이다. 911의 다른 모델과 달리 포르쉐 모터스포츠의 특징을 담고 있으며, 911 GT3 레이스카는 뉘르부르크링 24시간, 데이토나 24시간, 스파 프랑코샹 24시간 등 주요 내구 레이스에서 수많은 승리를 거뒀다.”


실제로 911 GT3의 개발에는 2회 월드 랠리 챔피언 발터 뢸(Walter Rohrl), 레이스 엔지니어 롤랜드 커스마울(Roland Kussmaul)과 바이삭(Weissach)의 포르쉐 모터스포츠 전문가들이 참여했다. 그래서 911 GT3은 가장 서킷에 어울리는 자동차 중 하나다. 지금까지 생산된 모든 911 GT3의 80%가 정기적으로 서킷을 달리고 있다는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 


또 다른 인기비결은 끝없는 개선. 1999년 등장한 첫 GT3(996.1)은 최고출력 360마력의 수평대향 6기통 3.6L 엔진을 얹었다. 전체 구성을 정밀하게 재조정해 지상고를 약 30㎜ 낮추고, 브레이크 성능을 높이는 한편 무게를 줄여 코너링 성능도 높였다. 이후 포르쉐는 GT3을 바탕삼은 GT3 R, GT3 RSR 등을 만들어 원메이크 및 GT 레이스에서 쏠쏠한 성과를 거뒀다.


이후 포르쉐는 3~4년 주기로 계속 GT3의 개선판을 만들었다. 2003년에 등장한 996.2 GT3은 바리오 캠(Vario Cam) 가변 캠샤프트 제어 기술을 적용해 최고출력을 381마력으로 올렸고, 포르쉐 세라믹 컴포지트 브레이크(PCCB)도 더했다. 


2006년 선보인 997.1 GT3은 최고출력을 415마력으로 높였고,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를 적용했다. 이후 2009년의 997.2 GT3에서는 배기량을 3.8L로 높이면서 최고출력을 435마력까지 올렸다. 한편 이 때까지는 수동 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었다. 


2013년에는 포르쉐 911의 50주년을 맞아 991.1 GT3을 선보였다. 엔진, 변속기, 차체 등 모든 부분을 새롭게 만들었다고. 최고출력 475마력의 수평대향 6기통 3.8L 엔진에, GT3 최초로 PDK(포르쉐 듀얼 클러치, Porsche DoppelKupplung) 변속기를 짝짓고, 액티브 리어 액슬 스티어링을 달았다. 다만 수동 변속기를 제외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후 2017년에 등장한 991.2 GT3은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의 배기량을 4.0L로 키워 최고출력을 500마력으로 높였다. PDK가 더 빠르지만, 직접 변속하는 맛을 원하는 마니아들을 위해 수동 6단 변속기 또한 추가했다. 특히, 최고출력 520마력의 GT3 RS는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에서 6분 56.4라는 기록을 세우며 918 스파이더의 기록도 뛰어넘었다. 


지난 해 11월 LA모터쇼에서 포르쉐 911의 8세대 모델인 992가 나왔으니 이를 바탕삼은 새 GT3의 등장도 머지않았다. 상품 변경 주기를 봤을 때는 2020년 말, 또는 2021년 초에 신형 GT3이 등장할 예정이다. 포르쉐의 정체성 중 하나는 ‘뉘르부르크링 랩 타임’이며, 또 다른 하나는 ‘자기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다. 차세대 GT3은 얼마나 빠를 것인지 절로 궁금해진다. 


글 안민희 기자(minhee@drivestory.co.kr)

사진 포르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