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규어를 상징하는 디자이너, 이안 칼럼(Ian Callum)을 한국에서 만났다. 디자인을 배우는 한국 학생들을 위한 대회, ‘재규어 카 디자인 어워드 2018’(Jaguar Car Design Award 2018)을 위해서다. 그는 12월 6일 해당 대회의 결선 심사와 시상을 맡아 자동차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보는 비전을 학생들과 공유할 예정이다.




이안 칼럼은 1999년부터 재규어 디자인 총괄 디렉터로 브랜드 전체의 디자인을 지휘하고 있다. 그는 재규어 역사상 가장 다채로운 라인업을 구축하는데 커다란 공을 세운 인물이다. 또한, 브랜드 최초의 SUV, 전기차 등을 선보이며 미래의 디자인 방향을 구축했다. 그가 한국 학생들에게 내건 문제는 ‘재규어 XJ의 50년 후 모습’이다. 12월 5일 열린 기자 간담회에 참석해 재규어 미래 디자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1968년, 재규어 XJ가 출시되던 해였죠. 보자마자 사랑에 빠졌습니다. 당시 10대였던 전 당장 매장으로 달려가서 브로셔를 받았어요. 벌써 50년이 지났습니다. 지금도 그 브로셔를 갖고 있어요. 50년 째 같은 이름을 유지하는 모델이 흔하진 않죠. 그래서 학생들에게 XJ의 100주년 모델을 디자인하는 과제를 남겼습니다. 2068년의 XJ는 어떨까요? 50년 후에 제가 살아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웃음)”




재규어와 같은 럭셔리 브랜드에는 어떤 디자인 정체성이 필요할까? 이안 칼럼은 브랜드 특유의 이야기가 중요하며, 자동차 라인업 전체를 감싸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재규어의 경우 오랜 역사와 가치, 탄탄한 브랜드 스토리를 갖췄기 때문에 이를 잘 풀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럭셔리 브랜드라면 바깥을 디자인할 때 우아함과 고급스러움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실내를 디자인할 때는 우선순위를 두고 고민합니다. 탑승객의 안위를 생각해서 편안하게 느껴질 수 있는 디자인을 하면서도 고성능적인 느낌도 담아야 하거든요. 딜레마랄까요? 다행히 재규어는 이 균형을 잘 맞추고 있습니다.”




이번 기자 간담회에는 재규어 최초의 한국인 디자이너인 박지영 디자이너가 참석했다. 그녀는 현재 선행 디자인 연구팀에서 외장 디자인을 맡고 있다. 콘셉트카의 디자인을 담당하며, 동시에 향후 10년의 모델 포트폴리오를 계획하고 있다. 미래의 재규어를 빚는 박지영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바라본 디자인 비전을 물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부터 계속 재규어의 디자인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금도 매일 재규어의 자동차들을 보고 있지요. 제가 생각하는 재규어의 디자인은 순수의 표현이에요. 자동차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죠. 사람들이 자동차에 기대하는 것은 속도와 아름다움입니다. 재규어는 이 부분을 잘 표현해왔어요. 모터스포츠 역사 또한 갖추고 있고요. 이를 모든 차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올 모든 차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늘 완벽한 비율로 순수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어요. 디자인에는 감성과 논리가 필요합니다. 재규어는 유행을 따라가지 않고, 시간을 이겨내는 디자인을 해요. 매번 볼 때마다 새롭단 생각이 들어요. 오랜 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자동차지요. 어떤 차를 만들더라도 재규어란 브랜드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디자인을 해야 해요. 본질적인 디자인을 잘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재규어가 아름다운 디자인을 강조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제작 과정이다. 이안 칼럼은 “회사에서 자동차를 만들 때 디자인에 상당히 많은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우선 고려 과제 중 하나이기 때문에 힘을 받고 있다. 재규어에게 최우선 순위는 디자인과 퍼포먼스다”고 밝혔다. 하지만 때로는 실용적인 결론을 내려야 할 때도 있다. 




“요즘의 자동차를 설계하고 디자인하는 데는 여러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 하고, 이를 모두 지키기란 상당히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기술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균형을 잡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지요. 따라서 양보할 부분과 양보하지 않을 부분을 명확히 구분해야 합니다. 시선을 끄는 아름다운 비율을 지키고, 디테일을 통해 철학을 부여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XJ의 예를 들고 싶네요. 10년 전에 작업을 했음에도 아직까지 훌륭한 디자인으로 인정받고 있지요.”




50년 후의 XJ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향후 10~20년 사이의 변화가 더 궁금했다. 자율주행 시대의 도래로 자동차를 바라보는 관점이 바뀌리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운전석이 사라지고 더 많은 사람을 태워야하는 시대가 오면, 재규어의 디자인 방향은 어떻게 바뀔까? 이안 칼럼에게 직접 물었다.




“지난 100년의 자동차 역사를 전부 돌이켜봐도, 새로운 시대의 변화가 가장 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재규어도 자율주행차 시대를 맞겠지요. 하지만 우리는 운전자의 개입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을 할 것입니다. 재규어는 운전자에게 재미를 주는 브랜드이기 때문이에요. 핸들이 완전히 없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대신 실내 공간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봅니다. 자율주행 시대가 온다면 4~5명이 함께 타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자율주행차 시대에 맞춰 디자인은 변할 것입니다. 하지만 재규어만의 디자인 철학은 계속 고수하고자 해요. 대중 브랜드의 자동차는 일상적인 도구로 바뀔 수 있겠지만, 럭셔리 브랜드는 개성이나 특징을 계속 유지해야한다고 봅니다.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은 피해야겠지요. 재규어만의 특성, 입지, 영향력을 유지할 것입니다.”

글 안민희 기자(minhee@drivestory.co.kr)

사진 재규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