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가 시각 장애인을 위한 내비게이션 사업에 투자한다. 직원 아이디어 공모전을 열고 우수한 기획을 골라 벤처 회사를 세우는 신사업 창출 프로그램 ‘이그니션’(Ignition, 시동을 뜻한다)의 1호 사례다. 


혼다는 기술자적 면모가 강한 회사다. “사람을 위한 기술로 사회 문제 해결에 공헌한다”가 이들의 좌우명.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그래서 혼다의 창업주 혼다 소이치로는 1970년부터 직원 아이디어 경연 대회를 열었다. 51년 동안 상당한 아이디어가 쌓였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혼다는 한계를 느꼈다. 좋은 아이디어를 받아도 전부 쓸 수는 없어 놓친 것이 많아서다. 그래서 사업화를 위해 벤처를 세우고 지원하는 신사업 창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프로그램의 1호 제품은 시각 장애인을 위한 내비게이션 시스템. 이름은 ‘아시라세’(あしらせ)다. 발, 걸음을 뜻하는 일본어 ‘아시’와 알림, 통지를 뜻하는 일본어 ‘시라세’의 합성어. 말 그대로 발에 신호를 보내는 장치다. 발에 고무 밴드를 차고 해당 장치를 붙이면 스마트폰 내비게이션 앱과 연동해 진동 신호를 보낸다. 


아시라세의 대표는 치노 와타루. 그는 혼다의 직원에서 신사업 대표가 되었다. “혼다는 자동차, 모터사이클 등을 만드는 이동성 회사죠. 그런 혼다에서 자율주행, 전기차 개발에 참여하면서 이동성의 본질은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그러던 중에 시각 장애인 가족이 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 사고로 인해 걷기도 하나의 이동성이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시각장애인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우리에겐 당연한 ‘걷기’를 포기하고 계셨어요. 자유롭게 걷는 것을 포기하지 않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에 개발을 시작했어요.”


저시력을 포함한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은 혼자 걸을 때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계속 확인해 바로잡는다. 그런데 시야가 제한될 경우 정보를 습득하기 위해 남아있는 모든 감각을 사용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의 감각에는 한계가 있다. 가령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을 경우 길을 잃거나 안전하지 못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이런 걱정은 심리적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따라서 치노 와타루 대표는 시각 장애인의 의견을 받아 내비게이션 제작에 뛰어들었다. 시각 장애인은 청각과 촉각에 기대는 비율이 높다. 그리고 보행 시에는 발바닥의 촉각을 최대한 이용한다. 따라서 스마트폰에서 설정한 경로에 따라 발에 진동을 보내는 방식을 택했다. 내비게이션이 아닌 다른 곳에 청각과 손의 촉각을 집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방법은 다음과 같다. 사용자가 직진해야 할 때는 발 앞쪽에 진동을, 좌회전 또는 우회전 시에는 해당 발 쪽에 진동을 보낸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계속 알려주니 조금 더 안전하고 편안하게 갈 수 있다고. 이들이 말하는 시제품 사용 후기는 인상적이다. “보행 중 마음의 여유가 생겨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게 되었다”는 후기가 있다. 아시라세는 2023년 3월 전에 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한편, 혼다는 신사업 창출 프로그램의 범위를 전 직원으로 확대하는 강수를 걸었다. 기술자 외에도 생산, 영업, 관리 등 다양한 직군의 신청을 받기 위해서다. 해당 프로그램에서 혼다는 사업적인 관점에서 경영과 영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는다. 위기 때마다 혼다를 구원한 경영의 천재, 후지사와 다케오와 같은 역할을 스스로 자처한 셈이다. 


글 안민희 기자(minhee@drivestory.co.kr)

사진 혼다, 아시라세